모질라 한국 커뮤니티 신구 리더와의 만남…10년이 걸린 뒷이야기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가 10년 만에 리더를 바꿨다. 2004년부터 자리를 지킨 윤석찬 씨는 이제 ‘그냥 활동가’가 된다. 그동안 자리에서 내려오기 싫었던 게 아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커뮤니티(이하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대다수가 겪는 상황 때문이다. 초기 활동가와 이후에 합류한 지금의 활동가 사이에 허리가 없다는 것. 윤석찬 전 리더가 본의 아니게 장기집권한 까닭이다.

옛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서울 한남동 사옥에서 만난 윤석찬 전 리더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뭍과 다른 제주도의 바닷바람 덕분인 걸까. (그는 옛 다음에서 DNA랩장으로서 제주 본사에서 일하며, 이따금 서울로 출장을 나왔다.) 10년 동안 짊어진 짐을 내려놓아서인가. 활짝 웃는 그의 곁에 신현석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 새 리더가 있었다.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에 세대 교체가 일어났다는 소문은 진즉 들었다. 2013년께였다. 어떤 공식 발표도 없었다. 새 리더가 조용한 편인 줄로 알았다. 윤석찬 씨가 평소와 다름없이 온라인으로 모질라의 소식을 전하면서 리더 교체 얘기는 까맣게 잊었다. 실은 이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세대 교체가 진행중이었다. 그 기간이 2년이다. 윤석찬 씨가 ‘그만 다른 사람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리더 바뀌었다’고 알리는 데에 걸린 시간이다.

리더 바꾸기는 소리 소문 없이 이루어졌다. 선거와 투표가 없었다. 그러니 조용할 수밖에. 일부러 투표를 하지 않았고, 할 수 없었다. 투표하려면 선거인단을 꾸려야 한다. 그런데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특성상 명단을 만드는 게 어려웠다. 선거권이 있는 사람을 가리는 기준을 어찌 만들겠는가.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 포럼에 드나든 사람이 6천명. 그 중에서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해 소식을 받는 사람이 100명 내외. 그 가운데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이 10명 안팎이다. 이들을 세는 데에 숫자는 딱 떨어지지 않는다. 윤석찬 전 리더와 신현석 새 리더는 ‘몇 명 가까이’라고 세었다. 그만큼 선을 긋기 어렵단 얘기다. 눈팅만 하는 사람은 커뮤니티 활동가인가, 아닌가. 이 물음에 누가 쉽게 답할 수 있으랴.

윤석찬 전 리더는 “오픈소스 커뮤니티 대부분이 그렇다”라며 신현석 새 리더가 나오기까지 있던 일을 들려줬다. 얘기는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모질라재단은 오픈소스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 1.0 버전을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인터넷익스플로러(이하 IE)가 주름잡던 때다. 파이어폭스는 잔잔한 호숫가에 떨어진 돌멩이 처럼 보였다. 파문을 일으키지만, 곧 가라앉고말 돌멩이. 이 예상은 빗나갔다. 파이어폭스는 IE 천하에 만족하던 MS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경쟁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가 몰락하고 처음으로 IE6 점유율이 90%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2005년 6월 85.6%를 기록) 이즈음에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는 윤석찬 씨를 리더로 세웠다. 1년 전에는 한국에서 사용자 포럼이 문을 열었다. 또 그 1년 전 윤석찬 씨는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신현석 씨는 윤석찬 씨가 리더로 활동을 시작한 2004년,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에 이름을 내밀었다

어라, 이상하다. 윤석찬 씨는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에 이름을 올리고 2년 만에 리더가 됐다. 헌데 신현석 씨는 10년 만에 됐다. 이거 참 너무하다. 누구는 2년 만에 된 걸 누구는 10년을 기다리게 하나.

농담처럼 건넨 이 말을 신현석 씨가 받았다. 그는 “우리나라 커뮤니티의 특성이 처음 만들고 나면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다”라면서 “커뮤니티 초기에 활동한 사람들이 안 놓는 건 놓고 나면 (활동의 맥이) 끊어질까봐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커뮤니티를 만든 사람이 끝까지 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개인의 것이라 그런 게 아니다”고 설명을 보탰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리더, 운영진이 바뀌지 않는 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란다.

그래,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커뮤니티에 정성을 쏟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면, 먼저 활동하던 사람이 손을 떼는 순간 그 커뮤니티는 흐지부지 문을 닫는다.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라고 이 운명을 피할 수 있었겠나. 아니다. 물론, 늘 북적이긴 했다.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항상 100명 정도 있었다. 그렇지만 6개월이나 1년 하면 길게 활동한 편이었다.

윤석찬 씨는 “다 그렇죠”라며 “현석 님은 누군가 질문하면 답을 남기면서 2004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부터 일을 놨다. 리더로서의 일 말이다. 다른 활동가들이 맡은 일을 누군가 메꿔야 할 때, 그럴 때에만 나섰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리더의 자리를 채우기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정 인물을 지명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새 리더를 더 빨리 세울 수 있었겠지만,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라며 새 리더가 등장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서두른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모질라에 줄곧 있던 사람이면서 커뮤니티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저 사람이 리더가 되겠지’라고 인정할 사람이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2년이 걸린 셈이다.

2014년 9월,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는 신현석 씨가 새 리더가 됐다고 발표했다. 발표랄 것까지 없다. 블로그에 쓰고, 이메일 그룹에 공지한 게 전부다. 글 하나 올렸을 뿐이지만,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는 큰일을 해냈다. 세대교체. 2012년부터 2년 동안 신현석 씨와 윤석찬 씨는 번갈아서 활동했다. 지금부터는 신현석 씨 몫이다.

신현석 씨는 리더로서의 포부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운영진의 변화 때문에 커뮤니티가 망가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역할이니까 부담스럽긴 한데요. 어떤 개인이나 몇몇 리더 그룹에 기대서 유지하지 않고, 커뮤니티 자체가 힘을 가지고, 커뮤니티가 살아서 움직이길 바라요. 모질라 글로벌 커뮤니티가 그렇거든요.”

새 리더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아직 짜지 않았다. 여기에 또 고민이 있다. 신현석 씨는 “한 사람이 굉장히 활발하게 나서서 얘기하면, 어느 정도 될 테지만 그러다 제 상황이 바뀌면 그 모습이 없어질 수 있다”면서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존재감 없는 리더’가 되려는 고민이랄까. 직장인 +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 리더 + 두 아이의 아빠 + 남편이라는 4가지 역할을 해내는 부담도 만만찮겠다.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는 리더가 바뀌는 와중에도 조용했지만, 변화가 있었다. 오프라인 모임이 잦아졌다. 활동가끼리 1년에 한 번 볼까말까 했는데 2012년과 2013년, 오프라인 모임이 3번 넘게 있었다. 그때마다 행사를 돕는 사람이 네댓 명이 있었다. 윤석찬 씨는 “내가 할 때엔 많아봐야 두세 명이었다”고 말했다.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신현석 씨를 소개하는 말이 길어졌다. 윤석찬 씨는 “조그마한 일개 커뮤니티 리더 하나 바꾸는 걸 가지고 그러나 싶을 텐데…”라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가 리더를 바꾸며 한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일반 이용자나 기업이 한 번씩 갖다 쓰는 오픈소스, 그 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얘기니까. MS를 혼쭐내고, 구글과 애플이 저가 스마트폰을 고민하게 한 모질라의 얘기니 말이다.

그런데 다음 리더는 언제 세울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듯 싶다. 잘못하다간 신현석 씨도 윤석찬 씨처럼 본의아닌 장기집권을 할 테니 말이다. 넌지시 건넨 이 말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다음 리더요?”, “이제 시작했는데!!!”

모질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에 방문해보자. 개발자가 아니어도 함께할 방법은 많다.

윤석찬과 신현석은 모질라의 무엇에 홀렸나

모질라재단은 웹이 모두에게 열려야 한다고 믿는다. 윤석찬 씨가 10년 넘게 활동한 원동력이 바로 모질라의 철학이다.

“모질라의 철학은 굉장히 이상적이에요. 험난한 웹 시장에서 홀로 이상을 추구하는데 그러면서도 현실에 발을 디뎠죠. 웹브라우저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말이에요. 이상과 목표를 술자리에서 얘기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현실에 적용해 제품을 만들죠. 저는 이게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윤석찬 전 모질라 커뮤니티 리더)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 문화는 신현석 씨가 2004년부터 10년 동안 활동하도록 이끌었다.

“포럼에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늘 있어요. 모질라가 품는 이상을 마음에 들어하는 거겠죠. 그런 분들을 도와주는 게 제겐 큰 에너지가 되요. 저도 모질라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찾아보고, 검색하고, 누구인지 모를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끔 정리한 걸 봤죠. 이게 건강한 문화란 생각이 들어요.” (신현석 현 모질라 커뮤니티 리더)

모질라재단은

모질라를 얘기할 때 ‘파이어폭스’가 빠질 수 없다. 파이어폭스는 오픈소스 웹브라우저로, 1998년 3월 시작했다. 당시 넷스케이프는 오프노스의 힘을 빌려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5.0을 개발하려고 했다. 넷스케이프가 소스를 열자, 개발자들은 반겼다. 그때의 개발자들은 프로젝트 팀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모질라 프로젝트다.

‘모질라’라는 이름은 웹브라우저 ‘모자익’에서 나왔다. 모자익을 만든 개발자들이 넷스케이프를 개발하는 데 참여하면서 모자익모다 더 좋은 웹브라우저를 만들자는 뜻으로 프로젝트 이름을 모질라로 지었다. 모질라는 ‘모자익 킬러'(Mosaic Killer)에서 나온 말이다.

이후 모질라는 활동 영역을 넓혔다. 모바일 운영체제인 ‘파이어폭스OS’를 개발하고 이 운영체제를 심은 저가 스마트폰을 2013년 남미에 출시했다.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는

모질라 프로젝트가 첫발을 뗀 1998년.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는 없었지만, 한글화 페이지가 있었다. 최준호, 신정식, 박원규, 박동수, 임동철, 오승영 등 초기 활동가가 해낸 일이다. 이후 2004년 3월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는 Mozilla.or.kr을 열면서 정식 커뮤니티가 됐다. 모질라 한국 커뮤니티가 걸어온 발자취는 ☞이곳에서 되짚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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